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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통을 깨부수는 시각

김희영

  미술사와 관련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미술사조와 여러 화가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대학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 제공처에서는 그 사조가 당시에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그 화가가 얼마나 사회에 반항했는지를 객관적으로 가르치는 척하며 찬양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현재 당시에는 혁신적인 작품들은 이제 고전 미술이라는 전통적이고 고풍스러운 작품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탈피하려고 했던 아카데미와 사회의 기존 인식을 깨트리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가장 아카데미의 기준, 그리고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아카데미화 되어버린 미술을 다시 한번 깨부수고 날 것이 된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하길 시도한다. 책은 4개의 장으로 구분되며 각 장마다 명확한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열화당, 2018

1. 본다는 행위.
  인간이 가장 처음, 그리고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감각 중 하나가 바로 시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보기 시작한 인간이란 생물은 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러나 인간은 지식을 습득하며 단순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다. 인간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과 머릿속 지식 간의 갈등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간다. 지구 탄생 이후 사회에서 지동설이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떠올려 보자.

2. 누드와 벌거벗음의 차이.
  누드화는 오랜 역사를 가진 소재다. 그만큼 오랜 기간 연구된 소재이지만 사람들은 누드화에 대해 논할 때 그 작품의 성적 욕망과 포르노적 용도에 대해 언급하길 꺼린다. 관능미, 육체미 등등 어떻게든 에두른 표현을 써가며 고상한 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치 미술 작품의 ‘야함’을 대놓고 언급하는 걸 금기시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모두가 애써 외면한 노골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누드는 분명 벌거벗은 상태이지만, 벌거벗음 그 자체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누드는 누드라는 개념 자체를 입는 것에 가깝다. 벌거벗음은 마치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누드를 입으면 오히려 강력한 속박이 된다. 그리고 누드를 논할 때 애써 언급하지 않지만 필연적으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여성의 인권에 대한 논담 역시 등장한다. 인류가 누드라는 핑계로 여성을 어떻게 물화시키고 착취하였는지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

3.유화의 역사 한계와 특징,
  유화는 가장 기본적인 미술 기법으로 오랜 기간 다방면으로 사용되어왔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보편성이 짙어 정형화되었다는 말이다. 책은 이 오랜 전통을 깨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화를 재해석한다. 유화만이 줄 수 있는 감각, 전통에 따른 그림 속 인물과 관객 사이의 거리감, 그 거리감에서 만들어지는 권력관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유화라는 이름의 자산.
  그 어떤 순수 예술도 자본 가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일수록 가격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술적 가치의 기준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이든 경제적 가치를 매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예술품을 유독 그 가치의 기준이 모호한 편이다. 책은 이 모순을 꼬집었다. 책에선 걸작과 그렇지 않은 작품에 명확한 차이가 있으며 그 기준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가진 예술의 의욕이라 주창했다. 즉 사회의 요구에 의해 기계적으로 찍어냈다시피 한 상업용 그림 평범한 작품이고, 화가가 어떤 예술의 투지를 불태우며 어떤 의미를 담고 전달하기 위해 그린 작품은 걸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역설이 하나 생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들은 대게 당시의 전통과 맞서 싸운 자들이나 그로 인해 오히려 그 당시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화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들이 창조해낸 새로운 것을 다른 화가들은 기법과 같은 피상적인 모방만 할 뿐 개념은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체제에 머물 뿐이었다. 그렇기에 뛰어난 예술가로 알려진 사람들에겐 비슷한 그림을 그린 사람만 많아졌을 뿐 진정한 후계자가 있는 일은 드물었다.
  이런 현상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 작품을 봄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상기한다. 만약 내가 가진 물건을 그린 그림을 본다면 자신이 그 물건을 소유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유화는 부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유화로 그리고, 다시 그 유화 작품을 봄으로써 소유주는 자신이 그 사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유화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소유의 만족감을 채우게 된다. 따라서 유화는 자산이기도 하며 동시에 자산의 상징이자 지표이기도 하다.

4. 광고의 역할, 광고와 유화의 사이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그만큼 돈을 버는 게 중요하고 기업이 돈을 버는 방법 중 대표적인 하나가 바로 광고다. 마케팅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마케팅은 단어 그대로 팔기 위한 판촉 행위이며, 광고는 이미지를 이용한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매체의 발달 그리고 그에 맞춰 끊임없이 새 콘텐츠를 생산하는 광고 때문에 인류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이미지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광고와 유화는 같은 선상에 있으나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유화를 봄으로 만족을 느낀다면, 광고를 봄으로 결핍을 느낀다. 유화는 과거 혹은 현재 자신이 소유한 것을 보여주지만, 광고는 미래에 자신이 소유하게 된 모습을 보여준다. 광고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현재 부족한 상태라고 속삭인다. 그래야 사람들이 광고 속 제품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람했을 때 풍족함을 느끼게 하는 유화와 정반대의 형태다. 또한 광고는 자신의 소유물이라 할 수 없으며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강제로 보게 된다. 이것은 유화는 오래 보존되어 후세까지 남길 수 있는 반면 광고는 빠르게 사라진다는 차이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유화같이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과거의 물건들은 현재 많이 사라지며 그 대신 언제든 대체 가능한 물건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의 발전 속도는 빨라지고 세상은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광고의 발전은 단순한 자본과 소비문화의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서 스스로 변화해야만 한다. 광고라는 빠르게 휘발되는 이미지는 우리에게 돈을 사용하면 그에 맞는 상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시대에 발맞춰 살아갈 수 있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상품을 구입하면 얼마 안 가 또 새로운 상품이 필요해지고 새 광고가 등장함으로 이 소식을 알려준다. 그럼 우리는 또다시 소비를 하고 이것은 계속 반복된다. 결국 우리가 돈을 소비해 받은 상품과 서비스는 실제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풍족하고 오래 지속되는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우리가 광고를 통해 만족을 얻었다는 백일몽에 빠져 살게 된다.
김희영 hppyh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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